[기획연재 11]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재인청 춤, 네 개의 스타일 2 태평성대, 태평무 오늘날 태평무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재인청 예인들에 의해 전해 내려오는 태평무와 구한말 명무였던 한성준에 의해 창안되어 전해지는 태평무로 크게 나눈다. 그런데 한성준의 태평무는 강선영과 한영숙에 의해 각기 다른 태평무가 되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또 다른 유형으로 추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태평무는 의식무용으로 본다. 관아나 궁중에서 태평성대를 기원하면서 만든 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동안의 태평무와 발탈을 무형문화재로 천거하고 지정하기 위해 문화재 위원의 자격으로 조사에 참여했던 고 정병호 박사는 태평무의 형태와 형식을 토대로 궁중의 정재呈才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설을 부인한 바 있다. 가장 현저한 형식적 차이는 무복에 있다. 강선영, 한영숙 두 태평무는 왕비의 복식이고, 재인청 태평무는 당상관 신분의 신하가 입는 관복이다. 그래서 화려하지 않다. 이 복식 덕택에 이동안 선생의 광무대 시절처럼 공연 때마다 일반인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일반 백성에게는 혼례복으로만 유일하게 허용되었던 관복이었던 까닭에
[기획연재 10]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재인청 춤, 네 개의 스타일 1 태평무가 ‘文의 춤’이라면 진쇠춤은 ‘武의 춤’에 해당한다. 문신들이 태평성대를 구현하고, 무신들이 승전의 기쁨을 전하는 나라! 당대의 위정자와 백성들이 꿈꾸었던 문치의 지향과 국방의 목표가 이 두 춤에 있다. 팔박무는 엄격한 정박의 타령춤과 엇의 기교가 넘치는 굿거리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두 춤을 넘나들다 보면 재인청 춤의 비밀을 고스란히 배우게 된다. 단순히 기교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추는 춤으로 규정되는 재인청 춤의 정체성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팔박기본무가 재인청 춤의 기본이고 태평무와 진쇠춤이 목적 지향의 춤이라면 엇중몰이신칼대신무는 일상에 충실한 삶의 이야기를 녹여내면서도 재인청 광대들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한껏 담아낸 춤이다. 스승께서 이 네 춤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신 것은 재인청 춤의 기본과 형상화, 지고의 예술성을 두루 갖추게 하실 목적은 아니었을까? 귀거래사, 팔박기본무 팔박기본무는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지는데 그 전반이 타령 장단에 기반을 둔 ‘타령춤’이고 후반이 굿거리장단에 기초한 ‘굿거리
[기획연재 9]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광대와 재인청 4 광대의 길 광대 이동안은 광무대 활동으로 차곡차곡 자신의 명성을 쌓아나갔다. 그 명성은 자연스럽게 일본 공연단의 일원으로 선발되기에 이른다. 1927년, 일본 순회공연을 앞두고 부민관에서 태평무와 학춤을 춘 것이 계기가 되어 일약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공교롭게도 나 역시 2011년 일본의 수도 동경에서 재인청 춤판을 펼쳤는데, 당시의 공연은 요코하마 일본국립대(현 수도대)에 재직하고 있던 다케다 요코 교수의 노력으로 성사되었다. 요코 교수는 15년째 일본에서 한국을 오가며 재인청 춤을 배우고 있는데, 13년 차에 일본에서 자신의 춤판을 펼칠 정도로 재인청 춤의 재일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우리가 섰던 동경의 능무대(能舞臺, 노부다이)는 일본 전통의 가무악 공연을 펼치는 전용 무대다. 리허설을 준비하면서 잠시 “선생의 일본 공연은 어땠을까?” 했었는데 놀랍게도 공연 후, 분장실로 찾아온 선생의 공연을 직관한 분들을 만난 것이다. 선생은 일본 공연을 여러 차례 펼쳤던 모양이다. “그분의 제자를 만나다니!”와 “스승의 관객을 만나다니!”로 세월
[기획연재 8]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광대와 재인청 3 그 핏줄을 어쩌랴 굳이 광대를 재인청의 역사와 함께 알아본 것은 이동안 선생의 집안 내력이 재인청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집안이기 때문이다. 재인청은 근본적으로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을 관통하는 축제의 역사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고 이동안 춤꾼의 등장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던 재인청 춤에 대한 재인청 예혼들의 마지막 선택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동안 춤꾼의 출생연도는 1906년이다. 부친 이재학과 해주 오씨 어머니 사이에서 맏이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단가와 피리의 명인이었던 이화실이다. 작은할아버지는 줄타기의 명인 이창실이었다. 아버지 이재학은 어떤 일에 종사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으나 어머니가 무업巫業에 종사했다는 진술이 있고 보면, 부친 역시 관련 일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진술에 의하면 그가 피리를 부는 장면이 목도된 적이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화실, 이창실 같은 명인의 아들인 이재학은 아들 이동안은 물론 자신의 어떤 자녀에게도 예업과 관련된 이야기만큼은 함구했던 게 분명하다. 그 연유는 모르겠으나 부친 이재학이 자신의 맏
[기획연재 7]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광대와 재인청 2 모가비와 비가비의 연리지 우리 민족은 축제의 민족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부족국가의 제천의식에서 비롯된 축제문화는 신라의 팔관회와 고려의 연등회처럼 국가 차원의 문화이다. 그런데 국가가 운용하는 국가의 축제이니만큼 축제를 이끄는 주역은 최고의 기예를 갖춘 당대 최고의 예인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 주역이 신라에서도 화랑이었고 고려에서도 화랑이었다는 사실이다. 신라의 화랑은 기예뿐만 아니라 국방과 국정 전반에까지 훈련된 신라의 미래이자 핵심 엘리트 세력이었다. 천 년의 제국 신라를 구축한 힘은 화랑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신라가 쇠약해지고 고려가 다시금 통일 국가를 만들면서 태조 왕건은 신라의 힘을 벤치마킹했다. 신라의 팔관회를 계승하고 불교를 국교로 세웠던 만큼, 연등회까지 국가 축제의 장으로 펼쳤다. 이런 고려의 근간이 필연적으로 화랑의 후예들을 선택의 여지 없이 축제를 담당할 주역으로 발탁한 것이다. 신라 화랑의 후예들 입장에서는 고려의 이러한 선택이 최소한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한다는 점과 최고의
[기획연재 6]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광대와 재인청 1 조선조 최고의 예술기관, 재인청 경기 장단, 전라 소리, 경상 춤이란 규정적 평가가 있다. 여기서 ‘경기 장단’은 예로부터 경기 무악 장단이 다른 지역 장단보다 화려하여 뭇 청중들을 사로잡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구의 경우, 한 20년 치면 “겨우 눈을 떴구먼!” 했단다. 경기 장단이 워낙 명성을 떨치다 보니 출신이 경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맷돌로 장단을 익혀 세 개를 닳아 없애면 장고의 고수로 인정하여 ‘왕산이’라 불렀다. 여기에 더해 유명한 춤꾼이나 세도가에서 꼭 찍어 부르는 유명세까지 업으면 ‘제공원提控員’이라 했다. 이 수준을 넘어서면 ‘제법사諸法師’라 하였는데, 이 칭호를 얻은 자만이 제자를 두고 가르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경기 장단’의 명성은 엄청난 시간과 피땀의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명성의 배후에는 재인청 예인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재인청의 교육과정은 장단뿐만 아니라 춤, 판소리, 줄타기, 민요, 기악, 재담, 연희 등등 가무백희歌舞百戱를 망라한 것이었다. 교육의 성취 정
[기획연재 5]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춤꾼의 문법 4 재인청 춤과 장단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 아니라 백문이불여일타百聞而不如一打다. 장단은 아무리 들어도 직접 쳐봐야 하는 것이었다. 태평무를 익히면서 재인청 춤이 장단과의 조화에서 절묘한 멋이 나온다는 것을 내 깜냥으로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태평무를 떼자 장단을 뜨고 이수증까지 받게 되는 일련의 성취들이 바쁜 일상으로 잦아들 즈음, 선생께선 이젠 장단 공부를 하라신다. 태평무를 학습하는 기간에는 눈길도 제대로 안 주시더니 선생께서는 요사이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부쩍 챙기신다. 문제는 경비였다. 무슨 장단 수업에 춤 작품비를 내야 하듯 써야 하는 것인지! 마침 나의 사정이 여의찮았던 터라 망설이다 못해 슬그머니 의심병이 생기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어렵게 배운 춤인데 장단까지 익히면 당연히 좋은 일 아닌가! 두 생각이 서로 티격태격하는데 나는 우리 춤이 가무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선생께선 춤꾼일 뿐이다. 전문 악사도 아닌데 무슨 작품비람! 남들처럼 MR을 쓰면 되지. 악사들은 뭐 먹고 살라고! 그런데 선생의 채근
[기획연재 4]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춤꾼의 문법 4 태평무 이수증 나만의 태평무 장단이 만들어지고 그리 오래지 않아 선생께선 용두동 연습실을 서대문으로 옮기셨다. 서대문으로 찾아간 내게 선생께선 느닷없이 “다음에 올 때는 받아쓰기 준비를 해오라” 하신다. 그즈음 선생의 발음이 어눌해지고 있던 터라 자꾸 말씀을 여쭙는 건 무리다 싶어 이유를 묻지 않았다. 무엇인가 글로 남겨야 할 중요한 가르침이 있다 지레짐작만 하고 국문학과 출신의 지인을 데리고 연습실로 갔다. 나와 동행한 지인 앞에 내놓으신 말씀은 놀라운 내용이었다. 「위의 문하생은 본인의 지도 아래 ‘태평무’ 전 과정을 원형대로 이수하였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전통무용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무용인의 한 사람으로서 특별히 끊이지 않고 ‘태평무’를 전수시키는 사명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이 기록은 본인이 계승, 전수해 온 ‘태평무’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다하였음을 알리는 것이며 꼭 같은 책임이 위 문하생에게 지워지게 된 것을 만인에게 알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선생께선 1983년 ‘발탈’로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 예능보유자로 지
[기획연재 3]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춤꾼의 문법 3 춤집 좋다 태평무는 장단을 모르면 제대로 춤을 출 수 없는 춤이다. 춤장단 자체가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장단이다. 여느 태평무 장단과 유사한 것 같은데 전혀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창작무용도 아닌데 도입부에서는 긴 호흡의 음악에 특정한 춤사위도 없이 그저 걸음만 걷는다. 그런데도 선생께선 장단을 치고 구음까지 얹으신다. 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끝없는 의문과 혼란 속에서도 선생께선 이렇다 할 답변을 해주지 않으셨다. 나는 그저 선생께서 첫날 시연해주셨던 태평무를 밑도 끝도 없이 추어야만 했다. 이런 와중에 더 이해할 수 없는 선생의 반응이 있어 기어코 나는 그 답을 들으려 무진 애를 쓴 기억이 난다. 선생께 춤을 배우러 온 다른 춤꾼들의 춤을 감상하곤 했었는데, 이상한 것은 춤을 잘 추는데도 선생의 표정이 일그러지곤 하는 것이었다. 선생의 답변은 이랬다. “춤을 잘 추는 것이 테크닉에 있지 않다.” 대충 이해는 하겠는데 그렇다면 춤을 잘 추는 핵심 요소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새로운 의문만 들었다. 나는 태평무만 일 년을 넘게 익혔다. 어
[기획연재 2]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수난의 초상 춤꾼의 문법 2 용두동과 태평무 선생께서 서울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첫 학원을 열었던 것은 광복 직후였다. 6 · 25 직전까지 학원은 교습생들로 대성황이었는데 심지어는 서울 장안의 명사 부인들이 선생을 후원하는 모임도 만들 정도였으니 이 시기는 광복의 기쁨과 함께 찾아온 선생의 생애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기였다 한다. 하지만 이후의 생활은 참으로 어려워서 대전에서의 삶은 참으로 처참하였던 모양이다. 우리 춤 백 년의 사진을 기록으로 남기신 고 정범태 사진기자께서 선생의 당시 생활을 보도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80년대에 이르러 다시 서울로 올라와 교습소를 열게 된 것이라 한다. 하지만 선생의 두 번째 서울살이는 자립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신당동에서 회기동, 용두동, 서대문을 거치는 동안 형편이 녹록지는 않으셨다. 결국은 수원 화령전 근처의 우거에서 거주하시다가 노환으로 영면에 드신 것이다. 내가 선생을 처음 뵌 것은 용두동 교습소 시절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용두동의 교습소는 참으로 초라했다. 컴컴하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르면서 아무래도 잘못 찾아온
제10회 홍천전국민요경창대회 * 아래 첨부문서의 신청서를 다운로드하세요.
제14회 안비취대상 전국민요경창대회 ■ 대회목적 故안비취 명창을 기리기 위해, 사단법인 한국의소리 숨에서 주최하는 민요경연대회로서 전국의 경기민요 신인들을 발굴·육성하는 권위 있는 국악 등용문으로 정착시키고, 경기민요의 전승과 보급에 기여하고자 하는 대회입니다. 21c를 맞아 국악의 대중화는 물론 우리문화의 세계적인 진출과 전통민요의 위상을 높이며 문화예술창달에 기여하고 공정하며 엄격한 대회를 운영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 일시 예 심 : 2024년 11월 4일(월) 오전 10시 (비대면 영상 심사) 본 선 : 2024년 11월 10일(일) 오전 10시 (학생 고등/신인/일반/명창부) 대면 심사 시 상 : 결승종료 후 역대수상자 축하공연 마치고 단심 수상하신 분들과 같이 시상식 진행 ※ 예선은 비대면 동영상 심사로 진행되며, 본선은 학생(고등)부, 신인부, 일반부, 명창부 만 대면으로 심사 진행됩니다. ※ 예선결과는 한국의소리 숨 홈페이지 공지사항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비대면 단심 경연하신 수상자분들도 본선 시상식에 꼭 참석하여 상장수령 합니다. ※ 본선경연, 축하공연 영상은 “Youtube 이호연TV” 채널에서 검색하시기 바랍니다. ■
제27회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 요강 ■ 기간 2024.11. 2.(토-예선) ~ 11. 3.(일-본선) ■ 장소 창원시늘푸른전당(경남 창원시 의창구 두대로 97/☎055-712-0372) ■ 주최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 조직위원회 ■ 주관 도지정전문예술단체 손양희국악예술단, 경상남도 판소리보존회 ■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경상남도, 창원시, 경상남도교육청, 경남신문, 경상남도창원교육지원청, MBC경남, 창원KBS, 경남도민일보, 경남메세나협회 특별후원 : 주식회사 부경 ■ 경연부문 ▷판소리 : 초등부, 중·고등부, 신인부, 일반부 ▷기 악 : 초등부, 중·고등부, 신인부, 일반부 ▷민요·가야금 병창 : 초등부, 중·고등부, 신인부, 일반부 ▷무 용 : 초·중·고등부, 신인부, 일반부 ▷풍 물 : 초등부, 중·고등부, 신인부, 일반부 ■ 참가자격 ▷일반부 - 대학생을 포함한 만 18세 이상의 모든 남, 여 ▷신인부 – 만 18세 이상의 모든 남, 여 ▷중·고등부 – 중학교,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또는 이에 준하는 자 ▷초등부 -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 경연시간 ■ 참가비 전체 없음. ■ 고수비 전체 없음. ■ 경연시간 안내 ※ 접수확인 및 순번표
제3회 삼국유사 전통음악전국경연대회 요강 ■ 기간 2024.10. 5.(토요일-예, 본선) ■ 장소 인각사 특설무대(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삼국유사로 250/☎054-383-1161) ■ 주최 대한불교조계종 인각사 ■ 주관 삼국유사전통음악경연대회추진위원회, 전문예술단체 손양희국악예술단 ■ 후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본사 은해사, 대구광역시청, 국가 유산청, 대구광역시교육청, 군위군, ■ 특별후원 홈센타홀딩스, 보광산업 ■ 경연부문 ▷판소리 :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신인부, 일반부 ▷민 요 :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신인부, 일반부 ■ 참가자격 ▷일반부 - 대학생을 포함한 만18세 이상의 모든 남, 여 ▷신인부 – 만18세 이상의 모든 남, 여(전공자 참가 불가) ▷중·고등부 – 중학교,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또는 이에 준하는 자 ▷초등부 -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 경연시간 참가비, 고수비 : 전체 없음. ■ 경연시간 안내 ※ 접수확인 및 순번표 배부 시간 : (시간 엄수) 고등부,일반부 - (08:40~09:00), 신인부 - (10:30~10:50), 초,중등부 – (12:00~12:20) ※ 예선 진
제27회 강원전국 국악경연대회 * 아래 첨부문서의 신청서를 다운로드하세요.
2024 대한민국 왕중왕전 국악 예술제 참가자 모집 한국전통문화계승선양회(약칭: 한문회, 대표 김선풍)가 2024년도 대한민국 왕중왕전 국악 예술제 참가자를 모집한다. 이 행사는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을 목적으로 하며, 민요, 판소리, 무용 등 세 가지 분야에서 참가자를 모집한다. 경연 부문은 민요(잡가, 경서도민요, 남도민요, 토속민요, 창작민요 중 선택), 판소리(다섯 바탕 중 선택), 무용(궁중무용, 민속무용, 신무용 중 선택)으로 구성된다. 전문인(전공자/이수자)과 일반인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나이 제한은 없다. 단, 예능보유자, 보유자 후보, 조교, 대통령상 수상자는 참가가 제한된다. 예술제 예선은 9월 14일(토) 세종대왕기념관 2층 실내공연장에서, 본선은 9월 29일(일) 동대문구청 실내대강당에서 열린다. 종합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100만원과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장상이 수여되며, 대상, 금상, 은상 수상자에게는 국회의원상, 서울시의회의장상 등이 주어진다. 상금은 각각 50만원, 30만원, 10만원이 수여된다. 접수는 7월 24일부터 9월 13일까지 진행되며, 각 부문별로 선착순 40명으로 마감된다.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한국전통문화계승선양회
제21회 화순전국국악대제전 * 아래 첨부문서의 참가신청서를 다운로드하세요.
제4회 정광수 전국판소리경영대회 * 아래 첨부문서의 참가신청서를 다운로드하세요.
2024년 가야국악대전 제14회 전국국악경연대회 * 아래 첨부문서의 신청서를 다운로드하세요.
2024 진도 전국 가무악 대제전 * 아래 첨부문서의 신청서를 다운로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