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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과부적(衆寡不敵)

 

 

시조로 새겨 읽는 고사성어(故事成語)

중과부적(衆寡不敵)

 

소국(小國)은 큰 나라를

대적(對敵)할 수 없습니다

 

소수(小數)는 많은 수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약자(弱者)는

진실로 강자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語義> : 무리가 적으면 대적할 수 없다.

             (적은 수효로 많은 수효를 이기지 못함)

<出典> : 孟子(맹자) 梁惠王章句(양혜왕장구) 上七(상칠)

 

 

중국 全國(전국) 시대,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王道論(왕도론 : 선한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덕치)을 역설하던 孟子(맹자)가 齊(제)나라 宣王(선왕, B.C.455~B.C.405. 전국칠웅에 속하는 제나라를 부흥시킨 왕)에게 말했다.

“殿下(전하)! 스스로는 放逸(방일 : 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방탕하게 놂)한 생활을 하시면서, 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천하의 覇權(패권)을 잡으려 드시는 것은 그야말로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연목구어)]’과 같사옵니다.”

“아니, 과인의 행동이 그토록 나쁘단 말이오?”

“가령, 지금 소국인 鄒(추)나라와 대국인 楚(초)나라가 싸운다면, 어느 쪽이 이기겠나이까?”

“그야, 물론 楚(초)나라가 이길 것이오.”

“그렇다면 소국은 진실로 대국을 대적할 수 없으며, ‘소수는 진실로 다수를 대적할 수 없으며’, 약자는 진실로 강자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지금 천하에는 1,000리 사방의 나라가 아홉 개 있사온데, 제나라도 그 중 하나이옵니다. 한 나라가 여덟 나라를 굴복시키려 하는 것은, 결국 소국인 추나라가 대국인 초나라를 이기려 하는 것과 같지 않사옵니까?”

 

<原文> 然則小固不可以敵大(연즉소고불가이적대) 寡固不可以敵衆(과고불가이적중) 弱固不可以敵强(약고불가이적강) 海內之地方千里者九(해내지지방천리자구) 齊集有其一(제집유기일) 以一服八(이일복팔) 何以異於鄒敵楚哉(하이이어추적초재) 蓋亦反其本의(개역반기본의)

 

이렇게 몰아세운 다음, 맹자는 王道論(왕도론)을 說破(설파)했다.

“왕도로써 백성을 悅服(열복 : 기쁜 마음으로 복종함)시킨다면, 그들은 모두 전하의 덕에 기꺼이 굴복할 것입니다. 또한 천하는 전하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될 것이옵니다. 이제 왕께서 王道政治(왕도정치)를 펴시고 仁政(인정)을 베풀어, 천하의 선비로 하여금 모두 다 왕께서 조정에 벼슬하고자 하게하며, 천하의 농민들이 모두 다 왕의 들에서 밭을 갈고자 하며, 온 천하의 장사치들이 모두 다 왕의 시장에서 장사하고자 하며, 여행하는 자들이 모두 다 왕의 길에 나아가고자 하게 하시면, 천하에 자기 왕을 미워하는 자가 모두 다 왕에게 따라와서 호소하려 할 것이니, 이와 같으면 누가 능히 막겠습니까?”

 

여기서 맹자가 말한 ‘적은 수는 진정 많은 수를 대적할 수 없다.’ 즉, ‘寡固不可以敵衆(과고불가이적중)’에서 ‘寡不適衆(과부적중)’이란 성어가 나왔고, 우리나라에서 다시 ‘衆寡不敵(중과부적)’이란 성어로 통용되게 되었다.

 

※ 鄒(추) : 중국 춘추시대 제후국. 국성은 曹(조). 주나라 무왕 때 조협(曹挾)이 현재 山東省(산동성) 鄒城市(추성시) 지역에 봉분되면서 시작된 제후국이다. 전설에 따르면 曹挾(조협)의 선조는 顓頊(전욱)의 다섯번째 아들 曹安(조안)이라고 한다. 鄒(추)나라는 孟子(맹자)가 태어난 곳이다. 원래 나라 이름이‘邾(주)’이었으나, 전국시대에 이르러‘鄒(추)’로 변경되었다.

※ 顓頊(전욱) : 고대 중국의 신화상의 제왕. 이름은 高陽(고양)이었고, 高陽氏(고양씨)로도 부른다. 五帝(오제)의 한 명으로 소호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재위는 78년이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는 昌意(창의), 어머니는 蜀山氏(촉산씨)의 딸인 昌僕(창박)이다. 창의는 황제의 아들이고, 전욱은 황제의 손자가 된다. 전욱은 다른 전설상의 천자처럼 고결한 인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史記(사기)에는 제사를 잘 거행한 군주로서 묘사되고 있다. 사기의 오제본기에 의하면‘인품은 고요하고 그윽하며 항상 深謀(심모)를 갖추고 있다.’고 전한다. 전욱은 민간의 사람들이 신과 관련되는 것을 싫어해 증손인 重(중), 黎(려)에 명해 하늘로 통하는 길을 닫아서 신과 사람이 구별을 두도록 했다고 한다. 이것은 한정된 계급만이 제사권을 장악했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전욱은 신권정치의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다.

 

※ 믿거나 말거나 ‘중과부적(스님과 부적)’의 유래

 

옛날에 30대 초반의 어느 분이 테니스에 입문을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운동이 테니스임을 알게 되었고, 늦게 알게 된 것을 아쉬워했지만, ‘이제부터라도……’ 하며 정말 열심히 테니스를 배웠습니다. 운동 신경이 어느 정도 작용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기량은 노력한 만큼 일취월장하여 단기간 내에 중급 이상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작은 동네 시합에서 B조 우승에 이어 A조 상위 입상까지 거머쥔 시간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테니스란 운동, 이것이 그렇게 만만한 게 하나 없고, 슬럼프에다 뭐에다 갈수록 태산, 할수록 어려운 거 아닙니까? 이것이 느는 것은 표도 안 나고, 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세상엔 가는 곳마다 기죽이는 고수들 천지라, 그는 본인의 실력이 우물 안의 개구리임을 깨닫고 실력 향상을 위해 더욱 정진,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실력은 제자리에서 맴도는 한계를 느끼자, 마침내 한 단계 더 높은 기량을 쌓기 위해 첩첩산중 속의 ‘太高寺(태고사 : 테니스 고수가 되는 절)’를 찾게 됩니다.

 

그 곳의 주지스님인 태철 스님께 무릎을 꿇고서 각오를 보인 끝에 어렵사리 수련의 승낙을 받기에 이르자, 그는 스님께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고 청을 합니다. 스님은 실눈을 뜨고 아래를 쳐다보며 말씀하시길,

“흐음, 소원을 이루려면 부적이 필요하다. 그 부적을 소지하고 다니면, 천하 어느 대회에 나가서 백전백승의 실력을 갖추게 되느니라! 단, 네가 그 부적을 받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할 여러 단계가 있느니…….”

하면서 꿇어앉은 그의 무릎 앞에 가죽 끈으로 묶인 네 권의 秘書(비서)를 툭 던졌습니다.

“할 수 있겠느냐?”

“………….”

비법이 담긴 책 이름은 ‘切磋琢磨(절차탁마)’, ‘臥薪嘗膽(와신상담)’, ‘切齒腐心(절치부심)’, ‘螢雪之功(형설지공)’이었다. 그 후 그는 부적을 받기 위해 비법이 적힌 책의 내용대로 춘하추동 각고의 노력을 하였으며, 마침내 노스님은 그 실력을 인정하여 부적을 써주게 됩니다.

 

이러한 옛이야기에서 ‘중과 부적’이란 말이 유래되었으며, 그 의미는 ‘뭐든 벅차다고, 택도 없다고, 미리 단정 짓지 말고 하는 데까지 해봐야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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