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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서의 우리음악유산답사] 시라기고토(新羅琴; しらぎごと) ; 일본에 있는 가장 오래된 온전한 형태의 가야금

 

시라기고토(新羅琴; しらぎごと) ; 일본에 있는 가장 오래된 온전한 형태의 가야금


나라현(奈良縣) 동대사(東大寺 ; とうだいじ) 정창원(正倉院; しょうそういん)


2009년 5월 나라현(奈良縣 ; ‘나라’라는 지명은 우리말 ‘나라’와 토지라는 뜻의 ‘나라스’에서 유래됨)에 있는 동대사(東大寺 ; とうだいじ)라는 절을 답사한 적이 있다. 들어서는 입구에서 제일 먼저 입장객을 반기는 것은 사슴들이었다.

 

동대사 및 불상 (사진 : 동대사 홈페이지)

 

걷는 길에 사슴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람들 사이를 누빈다. 사슴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걷다보면 일본 최대(1909년까지는 세계 최대)의 목조 건축물인 동대사를 마주하게 되는데 그 규모가 상당했다. 절도 절이거니와 목조건물 안에 안치된 거대한 청동 불상은 그 크기(높이 15미터, 귀 크기 2.5미터)에 압도되었다. 가히 인류무형유산으로 UNESCO에 등재될 만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 건축물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이유는 신라 출신 목수가 총감독을 하고 불상은 백제 출신 도래인이 디자인했다는 점에 있다.(나라현 공식 홈페이지 설명임) 

 


정창원 (사진 : 동대사 홈페이지)

 

국악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동대사가 갖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 정창원(正倉院; しょうそういん)이라는 창고 때문이다. 정창원(쇼소인)은 일본 황실의 보물을 9,000여 점이나 갖고 있는 창고인데 ‘시라기고토’ 우리말로는 신라금(新羅琴)을 보관하고 있다.

 

필자는 방문할 당시 매우 우매하여 그런 장소가 있는지도 모르고 눈에 담지 못하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신라금은 가야에서 신라에 전달된 가야금(혹은 가얏고)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라기고토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가야금이 일본 황실에 전해지면서 정창원에 보관된 것으로 보인다. 

 

정창원에서는 소장하고 있는 소장품 중 일부(6~70여 종)만 1년에 한 번씩 전시하고 있어 일본에 방문하여 시라기고토를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본은 소장품이 동아시아의 고대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로 쓰일 수 있으나 고대사에서 일본의 문화가 고구려, 백제, 신라 등 한반도의 영향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전시와 공동연구에 인색한 상황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2018년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는 9천여 점으로 알려진 소장품 가운데 백제, 신라, 중국 등 외국산 물품이 5%에 불과하다고 일본관계자들이 설명했으나 「정창원 소장품의 내용과 성격」에 따르면 대부분의 소장품이 나라시대(奈良時代) 이후에 소장된 것이라 한다. 결국 고대시대의 소장품 중 외래의 소장품은 이들의 주장처럼 소수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창(正倉)은 나라시대(奈良時代) 일본에서 관청이나 큰 사원에 있는 창고를 말한다고 한다. 현재는 동대사 한 곳만 남아 있어 귀중한 보고(寶庫)다. 나라시대 황실의 보물이 이 정창원에 보관되기 시작한 것은 동대사를 창건한 쇼무천황이 죽고 49재 법회를 거행할 때 그의 부인인 고묘황후가 남편의 명복을 빌며 천황이 생전에 애용했던 물품을 동대사 본존인 비로자나불에 헌납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서기 756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1,260년 넘는 세월 동안 유물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던 철저한 관리체계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이 위대한 유산은 그들의 자랑이 되어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는 UNESCO 무형유산이며, 매년 10~11월의 2주간 나라 국립박물관에서 벌어지는 ‘정창원전’이라는 전람회는 국민적 행사로 자리잡아 관람객이 호황을 이룬다고 한다. 한편, 생각해 보면 신라금이 정창원에 이렇게 오랜 세월 보관될 수 있었던 것이 우리로서도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라기고토 (사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정창원에 보관되고 있는 시라기고토(新羅琴)는 금니신라금(금니회목형金泥絵木形), 금박신라금(금박륜초형봉형金薄輪草形鳳形)과 신라금잔궐(新羅琴殘闕)이라 부르는 세 점이 전한다. 그 중 두 개는 819년(弘仁10)이라는 연대로 표시되어 있어 전달된 시점이 이 시기 즈음일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의 사료로도 그 시기를 예측할 수 있다. 이 시라기고토가 신라에서 전해졌음을 뒷받침해 주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후기(日本後紀)》에 의하면 809년경 신라의 악사(樂師) 2명 중 금사(琴師)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금사가 곧 가얏고의 선생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문덕천황실록(日本文德天皇實錄)》 2권에는 신라의 악인 사량진웅(沙良眞態)이 850년 11월에 일본 궁중에서 연주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정창원에 보관된 시라기고토(新羅琴)는 고대 한일간의 밀접한 음악교류 속에서 좀더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 음악 일본의 궁중음악이 되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각자 자기 나라의 악사와 악생을 왜국 조정에 파견하여 삼국악을 전파하였는데, 그 삼국악이 일본 역사서에 나오는 고마가쿠(高麗樂), 구다라가쿠(百濟樂), 시라기가쿠(新羅樂)이다. 고대사회의 한·일간의 음악 교류는 다음의 몇 가지 기록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 19권에 6세기 중반에 일본에 파견된 백제의 악인(樂人) 삼근, 기마차, 진노, 진타 이상의 백제 악사가 교대시켜 달라는 요청이 있어 임무 교대하였다는 기록이 전하고, 7세기 초에는 미마지(味摩之)가 일본에 귀화하면서 가면극의 일종인 기악(伎樂; 기가쿠)을 전하였다는 기록도 발견된다.

 

《속일본기(續日本記)》에 백제계 유민들이 백제풍 속무를 여러 차례 공연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고구려의 경우에도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추고천황(推古天皇) 고취(鼓吹) 등을 선물한 기록이 있다. 발해의 무악도 《속일본기(續日本記)》와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 《무악요록(舞樂要錄)》에 발해악을 연주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결단국지(契丹國志)》에 강강수월래와 유사한 '답추(踏鎚)'라고 부르는 가무가 있었다고도 전한다. 삼국시대 각국의 사신들이 머무는 영빈관에서 왜국왕이 환영잔치를 베풀었고, 고구려 사신이 머물던 상락관에서는 고마가쿠(高麗樂)를 연주하였고, 신라 사신이 머무는 신라관에서는 시라기가쿠(新羅樂)를 연주하였다.

 

이러한 고대 기록 이후 일본의 궁중음악에 대한 한일 음악 교류와 관련된 기록을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황실은 율령에 따라 가가쿠료(雅樂療; 일본의 왕립음악기관)에서 교습된 외국계 음악은 좌우 양부제로 정리하였다. 그 중 좌부악은 당악(중국 등의 음악), 우부악은 고려악(고구려, 백제, 신라의 음악)이다. 삼국의 음악은 본국인인 고구려계, 신라계, 백제계 유민들에계 교습하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기록된 문무천황(文武天皇)의 대보령(大寶令)에 따르면 외국계 음악과 관련한 악관의 구성을 당악(唐樂) 악사(樂師) 12명에 악생(樂生) 60명, 고려악, 백제악, 신라악 악사(樂師)가 각각 4명씩에 악생(樂生) 20명씩으로 하여 그 비중으로 72명씩 맞추고 있는 점도 재미있다. 이렇듯 고대 삼국의 음악은 일본의 궁중음악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며 연주되었다. 이러한 고대사회의 음악 교류를 생각할 때 시라기고토(新羅琴)가 정창원에 보관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정창원 복원 악기 남이섬에 전시되다!!!

 

남이섬 유람선

 

필자는 시라기고토(新羅琴)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실물을 직접 관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일본에 가서 전시된 악기를 볼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시간을 내고 싶지만, 언제 공개가 될지 알 수가 없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에 이 신라금이 복제가 되어 상설로 전시되는 곳이 있다고 하여 기쁜 마음을 찾게 되었다. 그 곳은 남이섬이다. 남이섬은 경기도 가평군에 위치한 관광지이다. 한류스타 배용준, 최지우가 출현한 '겨울연가'가 큰 인기를 끌면서 그 촬영지였던 남이섬이 성지처럼 되어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한다. 

 

그런데 이곳 남이섬에서 정창원(쇼소인)에 보관하고 있는 고대의 악기를 복원한 것이 전시되어 있다니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기쁜 마음으로 도착한 남이섬의 노래박물관 이곳 지하 1층은 류홍쥔(劉宏軍)이라는 음악가가 복원해 놓은 정창원의 악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바삐 시라기고토(新羅琴)를 찾아 걸음을 재촉했으나, 나의 걸음은 류홍쥔이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입간판 앞에서 떼어지지 않았다. 내게는 3개의 국적이 있다로 시작하는 그의 소개; 뤼홍쥔은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 국립 악단 생활을 하는 동안 문화대혁명을 겪는다. 중국의 전통악기는 점차 개량화, 서구화되고 전통음악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 일본으로 건너가 귀화를 결심하게 된다. 귀화의 배경에는 그의 부인의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인연이 작용했다.

 

 

일본으로 귀화한 류홍쥔은 정창원 천평악부 음악감독이 되었고 고악기를 복원하여 연주하는 활동을 한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음악 작업과 NHK 실크로드 관련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이름이 크게 알려진다. 이러던 중 재일동포 2세 문만일(그의 부모는 4·3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옴) 씨는 시라기고토(新羅琴)를 복원해 달라고 류홍쥔에게 부탁을 했다고 한다. 류홍쥔은 복원을 위해서는 최소한 100년 이상 되고 결이 고운 오동나무 원목을 구해줄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는데, 문만일씨는 2년 동안 일본은 물론 한국·중국까지 뒤져 기어이 뤄양에서 150년 넘은 오동나무를 구했고 결국 신라금이 복원되기에 이르른다.

 

복원된 시라기고토(新羅琴)

 

이 신라금이 남이섬까지 오게 된 것은 남이섬의 부회장이 류홍쥔에게 남이섬에 박물관 건립을 제안하였고 섬의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된 음악가는 흔쾌히 악기를 들여왔는데 그런 악기가 벌써 500여 점이 넘는다고 한다. 전시된 악기는 진기한 모양을 한 작품들이 많다. 음악가가 복원한 것이라 모양만 복원한 것이 아니라 실제 연주가 가능하도록 복원하였다고 하니 보다 뜻깊다.

 

 

복원된 당비파(끝이 구부러지고 4현)

 


복원된 향비파(구부러지지 않고 5현)

 

전시물 가운데 4현 비파는 페르시아에서 기원한 악기로, 5현 비파를 인도에서 기원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악기가 생성된 연원은 페르시아와 인도라고 해도 그 악기의 문양의 좌우대칭 구조를 보았을 때 당비파와 향비파 모두 한반도 악인들이 전해준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최재석 교수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천년 전 가야금이 시라기고토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보전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전통의 문화유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철저하게 관리를 해 온 일본 사람들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류홍쥔이라는 훌륭한 음악가가 중국을 떠났고 최근에는 중국의 음악가들이 대한민국의 국악대학으로 유학을 오는 이유는 획일적 사고에 경도된 사회주의자들이 문화대혁명이라는 미명 하에 그들의 전통음악을 파괴시켰기 때문이다. 그나마 중국의 전통음악이 남아 있고 그 단초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점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가까이 북한도 주체사상의 미명 하에 우리의 전통음악을 지배계급 양반의 문화이며 봉건시대의 잔재라 하여 모두 없앴다고 한다.

 

정창원의 시라기고토와 남이섬 복원악기를 보면서 전통문화와 음악을 지키고 보전하는 가치가 지니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이 우리의 음악인 국악을 소중하게 여기고 현재에 함께하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함께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최은서(한성여중 교사, 국악박사)


<참고자료>
스기모토가츠키, 『정창원 역사화 보물』, 동북아역사재단, 2015
최재석, 『정창원 소장품과 통일신라』, 일지사, 1996
최재석, 「정창원 소장품의 내용과 성격 : 정창원 소장품 여구 서설」, 『미술사학연구』 제199·200호, 한국미술사학회, 199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라금」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811)
전덕재, 『한국 고대음악과 고려악』, 한연문화사, 2020
송방송, 『증보한국음악통사』, 민속원, 2014
나무위키 「도다이지」, 「정창원」, 「정창원 신라금」
동대사 공식 홈페이지 (https://www.todaiji.or.jp/)
블로그 큐레이터가 들려주는 남이섬 이야기 - 남이섬 악기 할아버지 이야기
(https://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exhibitionnae&from=postList&categoryNo=1)
한겨레신문 2019.10.19. “1300년전 ‘신라금’ 소리 들으니 기쁘고 보람 느껴”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5944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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