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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서의 우리 음악 유산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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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서의 우리음악유산답사] 뚝섬, 동묘 그리고 무신(武臣)의 제례악

뚝섬, 동묘 그리고 무신(武臣)의 제례악 뚝섬 뚝섬은 섬은 아니지만, 큰 비가 오면 한강이 범람하여 섬처럼 보이던 곳이었다 한다. 다른말로 ‘살곶이벌’이라고도 불렸는데 다음과 같은 일화 때문이다. 태종 이방원은 아우 둘과 정도전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화가 난 아버지 이성계는 자식인 태종과 인연을 끊고 함흥으로 떠나 버렸다. 태종은 아버지의 환궁을 권하기를 2년이나 지속했다. 이를 권하기 위해 함흥으로 갔다가 살아오지 못한 신하를 함흥차사라 부르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이다. 무학대사의 간청에 못 이겨 서울로 돌아오던 이성계는 뚝섬 근처에서 마중 나온 태종을 마주하게 되고, 분노를 참지 못해 아들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그 화살이 태종이 피한 기둥에 꽂히니 그 뒤로 이곳을 화살이 꽂힌 벌판이라는 뜻으로 ‘살곶이벌’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임금이 매사냥을 즐기던 사냥터였기에 화살이 많이 꽂혀서 생긴 이름이란 말도 있지만 신궁(神弓)이라 불리던 태조 이성계의 화살 이야기가 더 드라마틱하다. 뚝섬 수도박물관에 설치된 둑기(纛旗) 조선시대 이곳 뚝섬은 병사들을 사열하는 연무장(演武場)을 두었던 곳이기도 했다. 지금도 연무장길이라 불리는 도로명이 있어 그 역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