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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8]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기획연재 8]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광대와 재인청 3

 

그 핏줄을 어쩌랴
굳이 광대를 재인청의 역사와 함께 알아본 것은 이동안 선생의 집안 내력이 재인청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집안이기 때문이다. 재인청은 근본적으로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을 관통하는 축제의 역사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고 이동안 춤꾼의 등장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던 재인청 춤에 대한 재인청 예혼들의 마지막 선택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동안 춤꾼의 출생연도는 1906년이다. 부친 이재학과 해주 오씨 어머니 사이에서 맏이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단가와 피리의 명인이었던 이화실이다. 작은할아버지는 줄타기의 명인 이창실이었다. 아버지 이재학은 어떤 일에 종사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으나 어머니가 무업巫業에 종사했다는 진술이 있고 보면, 부친 역시 관련 일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진술에 의하면 그가 피리를 부는 장면이 목도된 적이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화실, 이창실 같은 명인의 아들인 이재학은 아들 이동안은 물론 자신의 어떤 자녀에게도 예업과 관련된 이야기만큼은 함구했던 게 분명하다. 그 연유는 모르겠으나 부친 이재학이 자신의 맏아들 이동안에게 ‘통감通鑑’을 익히게 한 것을 보면, 의도적으로 예인의 길과는 다른 길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린 이동안이 열두 살이 되던 해, 마을을 찾은 남사당패의 출현은 아버지의 노력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만다. 그만 그들의 연희에 홀린 나머지 가출을 해버린 것이다. 당시 남사당패의 모가비는 정화춘이었다. 이 정화춘의 남사당패를 따라다니면서 어린 이동안이 처음 익힌 예기는 줄타기를 시작으로 땅재주를 익혀 패거리의 무동으로 전국을 떠돌게 된다. 그의 줄타기 스승은 당대 최고의 줄광대인 과천 찬우물의 김영철 명인이었다.

 

하라는 글공부를 작파하고 세상을 떠도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아비는 각고의 노력 끝에 황해도 해주에서 연희판을 벌이고 있던 아들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미 성년이 된 아들을 집으로 끌고 와 강제로 혼인을 시켰으나 겨우 나흘 만에 야반도주한다. 남사당패가 어린 이동안의 몸에 감추어졌던 끼를 깨운 것이라면, 그 끼는 이미 뿌리칠 수 없는 삶이 되어 버린 것이다. 스승께선 그때 왜 그러셨냐는 나의 질문에 “핏줄이지. 재인청 핏줄이었던 게지” 하셨다.

 

이 두 번째 가출로 인해 이동안은 당대 최고의 흥행사 박승필의 눈에 띄어 광무대光武臺에 입성하게 된다. 광무대는 당대 최고의 예인들이 소속된 어벤저스 팀이자 그들이 활동하는 최고의 무대였다. 이동안의 광무대 입성은 인생의 분기점이 되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된다. 바로 이 광무대에 김인호金仁浩라는 재인청의 마지막 춤꾼이 활동하고 있었다.

 

재인청과 재인청 춤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이동안은 김인호가 유일하게 남은 재인청 춤꾼이라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결혼시키면 집안에 눌러앉을 거라 여겼던 아비는 광무대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아들을 찾았던 모양이다. 그리고는 김인호를 만나 집안과 아들의 내력을 말하고 재인청 춤 이수를 부탁한 것이다.

 

이로부터 이동안이 스승 김인호로부터 십 년에 걸쳐 배우고 익힌 재인청의 춤은 30여 가지에 이른다. 이 이후로 이동안 춤꾼은 재인청의 마지막 도대방都大房이라 자처했다. 이는 사실상 해체된 재인청 조직의 계승이 아니라 재인청 광대라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었고 재인청의 여러 예기 중에서도 가장 중요했던 춤의 전승을 다짐한 선언이었다.

 

이동안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재인청의 조직 속에서 활동했던 명인은 물론, 당대를 풍미한 내로라하는 예인들로부터 수많은 기예를 익혀 나간다. 춤과 장단의 명인 김인호를 비롯하여 줄타기의 명인 김관보, 발탈과 재담의 명인 박춘재, 남도소리의 명인 조진영, 대금 피리 해금의 명인 장점보, 태평소의 명인 방태진 등 그의 스승과 학습 종목은 끝이 없었다. 왜 스승 이동안은 그리하셨을까? 재인청 광대들은 전통적으로 만능 엔터테이너였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런 광대들의 수장인 도대방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마땅히 해야 한다고 믿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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