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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10]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기획연재 10]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재인청 춤, 네 개의 스타일 1

 

태평무가 ‘文의 춤’이라면 진쇠춤은 ‘武의 춤’에 해당한다. 문신들이 태평성대를 구현하고, 무신들이 승전의 기쁨을 전하는 나라! 당대의 위정자와 백성들이 꿈꾸었던 문치의 지향과 국방의 목표가 이 두 춤에 있다.
팔박무는 엄격한 정박의 타령춤과 엇의 기교가 넘치는 굿거리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두 춤을 넘나들다 보면 재인청 춤의 비밀을 고스란히 배우게 된다. 단순히 기교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추는 춤으로 규정되는 재인청 춤의 정체성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팔박기본무가 재인청 춤의 기본이고 태평무와 진쇠춤이 목적 지향의 춤이라면 엇중몰이신칼대신무는 일상에 충실한 삶의 이야기를 녹여내면서도 재인청 광대들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한껏 담아낸 춤이다. 스승께서 이 네 춤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신 것은 재인청 춤의 기본과 형상화, 지고의 예술성을 두루 갖추게 하실 목적은 아니었을까?

 

귀거래사, 팔박기본무

 

팔박기본무는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지는데 그 전반이 타령 장단에 기반을 둔 ‘타령춤’이고 후반이 굿거리장단에 기초한 ‘굿거리춤’이다. 타령춤에서는 팔을 수평으로 펼치는 사위와 앞으로 내미는 사위, 양팔 교체하는 사위, 도는 사위, 앉는 사위, 자주자주 팔바꾸기 등이 많이 나오며, 굿거리춤은 앉아서 시작하는데 무대 정면을 의식하지 않고, 앞, 뒤, 측면을 가리지 않고 추는데 정확히 여덟 방향을 돌면서 춘다.

 

양팔 올리는 사위, 팔 바꾸는 사위, 사랑사위, 팔박 사위, 상하체사위, 건너가는 사위 등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구성진 사위들이 많고,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으나 정갈한 맵시가 있다. 반면에 굿거리춤은 춤사위의 변화는 심하지 않은데도 동선이 자유로워 대단히 기교적인 춤으로 보이게 한다. 한마디로 멋을 극대화한 것이다.

 

그런데 여느 기본무와는 달리 팔박기본무는 4박을 기본으로 춤 동작 하나를 완결시키지 않고 4박 하나를 잇대 8박을 기본으로 한 회무回舞가 특징이고 춤 동작 하나를 완결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때문에 특히 타령춤 부분에서는 춤의 호흡을 길게 할 뿐만 아니라 장중하면서도 단단한 춤사위를 만든다. 재인청 춤들이 단단한 위엄을 잃지 않고 예사롭지 않은 깊은 품격을 갖춘 춤사위가 되는 것은 전적으로 이 타령춤의 위력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서 타령춤이 빠른 타령장단이 아닌 느린 타령장단을 쓴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느린 만큼 궁중무용의 격식과 장중함을 갖출 수 있고 위엄이 있어 보인다는 거다. 이 타령춤이 재인청 춤의 기본이 된 것은 재인청 광대들이 뜬광대와는 달리 대령광대待令廣大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대령광대였던 만큼 궁중무용을 벤치마킹하여 일정한 격식을 갖추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 재인청 팔박기본무를 주제로 한 새로운 시각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의 우주관 내지는 자연관과 결부시킨 것인데, 단순히 참고할 수준을 넘어 내게도 새로운 눈을 뜨게 한 소중한 견해였기 때문이다. 곰곰이 씹다보면 뭔가 마음에 닿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물은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리는 것이다. 이를 ‘래來’라 한다. 그런 연후에 흐른다. 이를 ‘거去’라고 한다. 흐르면서 또는 흐르고 흘러 바다에 이르러 하늘로 돌아간다. 이를 ‘귀歸’라 한다. 이를 ‘귀거래사歸去來辭’라 하는데 동양에서는 근본적으로 물의 흐름을 귀거래歸去來의 거대한 순환의 개념으로 인지한다.

 

팔박기본무의 타령춤과 굿거리춤을 반복하여 되돌려 보면, 사실은 두 춤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저 동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 까닭인지 마치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객석의 평가가 있다. 어쨌든 타령춤은 장단과 한 몸이 되어 엄격하게 정박을 밟는다면, 굿거리춤은 다양한 기교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정작은 기교라 규정할 만한 춤사위가 없다. 타령춤과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많은 변화를 만든다. 신기한 일이다.

 

핵심은 동선의 차이다. 타령춤의 동선이 거대 우주의 순환을 따른다면 굿거리춤 역시 도돌이처럼 반복을 거듭하지만 귀거래의 장면 장면에서 작은 흐름을 만들 뿐이다. 큰 순환과 작은 순환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고 할까? 마치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면서 달이 지구 둘레를 도는 것과 같은 이치다. 두 공전이 늘 같은 순환을 하면서도 반복할 때마다 세월이 흘러 세상이 달라진 느낌이다.

 

재인청 춤을 일러 이동안 선생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추는 춤이라 한 바 있다. 하지만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유연한 물길의 선이 아니다. 끊임없이 순환하며 생긴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귀거래의 춤이다. 나는 재인청 춤의 정체성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재인청 춤을 배우려면 필수적으로 배워 익혀야 하는 춤이 있다. 이를 선생께선 ‘기본무’라 부르셨다. 우리 춤의 유파들 사이에는 송범 선생의 기본무가 두루 퍼져 있다. 두 기본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전자의 경우가 정박에 기초를 둔 박이라면 팔박기본무는 3분박을 주로 하는 춤사위로 엮여있다는 것이다. 정박을 쪼개 추는 데는 전자가 유용할 것이나 우리 춤의 속 멋을 탄탄하게 받치는 엇박을 노니는 춤은 후자의 것이 훨씬 유용하다. 재인청의 기본무는 크게 전후반으로 나누어 전반은 타령장단에 기초하여 ‘타령춤’이라 하고 후반은 굿거리장단에 기초하여 ‘굿거리춤’이라 부르는데 이 둘을 합치면 우리 춤 장단이 지닌 팔박의 특징을 제대로 아우르는 춤사위를 익힐 수 있다. 그리하여 재인청 기본무의 두 영역을 모두 아울러 ‘팔박기본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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