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옥진(1931~2012)
1931년 8월 17일, 광주광역시 남구 서동에서 전라남도 지방 문화재 공대일의 4남매 중 둘째로 출생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에게 창을 배우기 시작했다. 10세 전후해서 당대의 무용가 최승희 휘하에 들어갔는데, 최승희의 밑에서 정식으로 춤을 배운 것이 아니다. 공옥진의 부친이 징용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한 돈을 마련하고자, 돈 천 원에 딸인 공옥진을 최승희에게 몸종으로 팔아 버렸다고 한다.
여기서 겪은 고초는 이후 1人 창무극 '심청'에서 구구절절이 묻어나온다. 진짜 최승희가 제대로 부려먹었다고 한다. 공옥진의 인생을 다룬 책 <병신춤을 춥시다>를 읽어보면, 최승희가 좋아하는 배를 가지고 오다가 전철 승강장에서 가방 끈이 풀려 승강장에 전부 굴러갔는데 주변의 일본인들은 "조선 아이가 배가 흩어졌다고 운답니다"라고 웃기만 하며 도와주지도 않고, 최승희는 "배가 꼴이 왜이러냐"고 힐책했다고. 참고로 최승희는 평소에 제자들에게 자기 발을 씻기게 할 정도로 제자들을 자기 하녀 부리듯이 마구 험하게 부려먹었다고 하는데, 하물며 공옥진은 정식 제자도 아니고 몸종으로 팔려온 신세였으니 그 고초가 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옥진은 무용을 훔쳐 배웠고[5], 최승희는 공옥진이 춤을 배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춤을 조금씩 가르쳐 주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조선인에게 공옥진을 돈 2천원을 받고 다시 넘겨 버렸다. 다행히 태평양 전쟁 와중에 귀국할 수 있었다.
귀국 후 여러 극단을 전전하며 공연했다. 임권택 감독의 증언에 따르면 이 시기 판소리의 매력을 알려주려 한 먼 친척 어른과 찾은 기생집에서 공옥진의 공연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절에 한번 들어간 적도 있는데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서 고기 구워먹는 등산객들에게 '병을 앓고 있는데 고기 먹는 게 최고라더군요'라고 하여 고기를 얻어먹고, 고기 냄새가 날까 봐 생쌀을 씹어서 고기 냄새를 감추려 했다고 한다.
이후 계속적으로 1인 창무극과 민속 무용 연기 모방춤, 곱사춤(병신춤) 등등의 공연으로 다양한 활동을 보였지만, 두 차례의 뇌졸중과 한 차례의 교통사고로 인한 건강 악화와 노환으로 2012년 7월 9일 향년 81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