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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신학철 개인전, 시대의 몽타주로 되살아난 ‘한국 현대사’

관훈갤러리 ‘신학철 개인전: 한국현대사 어제와 오늘’, 7월 13일까지

 

신학철 개인전, 시대의 몽타주로 되살아난 ‘한국 현대사’

 

100년 전 잊혀진 비극을 오늘날 예술로 다시 불러낸 이들이 있다. 관훈갤러리에서 7월 13일까지 열리는 신학철 개인전 『한국현대사 어제와 오늘』에서는 일제강점기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집단학살을 주제로 한 회화 작품이 전시되어 관람객들의 가슴을 울린다. 이와 함께, 이 넋들을 위로하는 춤을 춘 이는 최근 ‘이애주 춤 문화상’ 시대창작 부문을 수상한 장순향 명무이다.

 

“이럴 수가 있나” 사진 앞에서 울었던 작가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전역에서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불을 질렀다”는 유언비어가 퍼졌고, 그 결과 수천 명의 조선인이 민간인과 경찰, 군대에 의해 무차별 학살당했다. 이 역사적 비극은 지금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가 없는 채로 남아 있다.

 

작가 신학철은 1979년 동숭동 미술회관 자료실에서 『사진으로 보는 한국현대사』를 넘기다 이 사건의 사진들을 처음 접했다. “그럴 수가 있나” 싶어 책을 덮고, 끝내 울음까지 터뜨렸던 그날의 충격은 평생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았다.

 

관동대지진_한국인학살

 

신학철 작가와 장순향 명무

 

“2012년에 한 차례 그림으로 다뤘지만, 그 정도로는 빚을 갚은 게 아니었어요. 이건 숙제였고, 2023년 100주년이 되자 더는 안 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복수의 감정이 아닌,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예술적 책무로 다시 붓을 들었다. “복수는 일본보다 더 잘살고 강해지는 것”이라고 말하며, 일본이 부정하지 못하도록 실제 사진을 참고해 원근법까지 사실적으로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장순향 명무, 그림을 보고 춤을 추다

 

이 그림은 또 다른 예술가의 혼을 흔들었다. 한국춤의 맥을 이어온 장순향 명무는 작품 속에 담긴 영혼들의 울림을 감지하며 진혼무(鎭魂舞)를 결심했다.

 

그는 “사진을 보는 순간, 일본 현지에서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며칠 동안 몸이 아플 정도로 기운이 왔다”고 말했다. 관동대학살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즉흥 진혼춤을 춘 그는, 무대 위에서가 아니라 마음속에서부터 넋들과 합일된 듯 움직였다.

 

진혼무를 추는 장순향 명무

 

장 명무는 매년 일본 현지 추모제에서 진혼춤을 올려왔으며, 2023년과 2024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관동대학살 100주년 추모제 등에서도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왔다.

 

그리고 최근, ‘이애주 춤 문화상’ 시대창작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며, 고 이애주 선생의 실천정신을 계승한 한국춤의 창작자이자 행동하는 무용가로 주목받고 있다. 당시 시상식에서도 그는 “춤은 곧 삶과 죽음을 잇는 통로이자 넋을 달래는 언어”라고 말한 바 있다.

 

역사와 예술, 그리고 기억의 몽타주

 

이번 전시는 관훈갤러리 전관에서 진행되며, ‘촛불 혁명’, ‘관동대학살’, ‘관동대지진_한국인의 학살’ 등 역사적 사건을 다룬 대형 회화가 전시된다. 2층에는 AG(한국아방가르드 협회) 활동 시기의 작품들과 더불어 ‘시대의 몽타주’ 시리즈가 전시되어, 시대의 아픔과 예술의 감응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한다.

 

 

관훈갤러리 측은 “이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이 단순한 양식 실험을 넘어서, 시대의 진실과 마주하고 그것을 시각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왔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신학철 작가 역시 “예술은 삶과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며 이번 전시가 단지 과거의 재현이 아닌, 오늘의 질문이 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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